QT

말라기 3:7~12
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3: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3: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최근에 메디아에서 십일조 헌금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지한 신학적 고민 같지는 않고 십일조를 안내도 된다고 하는 근거를 찾으려는 것 같습니다. 십일조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이라는 말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성경적이라는 말을 하지만 통전적 이해없이 몇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야 한다고 말하는 주장의 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론을 만들어놓고 근거를 찾는 것은 반칙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그것에 따라 이해하고 고백하고 실천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성경적인 삶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관심은 아마도 교회 재정관리의 불건전과 맞물려서 더 부정적인 시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 교회재정관리라는 주제는 충분히 비판과 논의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교회재정관리와 성도의 십일조 헌금은 엄밀하게 별개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이 성경적입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인간의 욕심입니다. 욕심을 위하여 성경적 근거를 찾으니 그것이 민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위해서 어떤 해설이나 해석을 하는 것이 오히려 본문을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개인적으로 성도들이 헌금에 부담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소득으로 풍성하게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풍성한 삶은 하나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의 욕심이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이해이고 고백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종교적 굴레가 아니라 재정의 세계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실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IPdrIgD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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